디자인 씽킹 : 고객중심은 태도가 아니다
3편. 문제를 데이터로 본다
"불편해 보여요"로는 팀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문제를 데이터로 인식하는 이유와, 제품 지표와 시장 지표를 나눠 보는 법, 그리고 퍼널을 쪼갠다는 것.
회의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말합니다. “이 화면 좀 불편해 보이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답합니다. “저는 괜찮던데요.” 그리고 대화가 멈춥니다. 두 사람 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머릿속에 다른 그림이 있을 뿐입니다. 문제를 느낌으로 이야기하면 늘 이렇게 끝납니다.
지난 편에서 우리 고객을 정의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고객이 겪는 문제를, 모두가 같은 그림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핵심 도구는 데이터입니다.
왜 하필 데이터인가
데이터를 이야기하면 흔히 “숫자로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맞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팀이 같은 이해를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불편해 보여요”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색이 촌스럽다는 뜻으로, 누군가는 버튼이 작다는 뜻으로, 누군가는 단계가 많다는 뜻으로 듣습니다. 반면 “이 화면에서 열 명 중 여섯 명이 이탈합니다”는 모두가 똑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논쟁의 출발점이 같아지는 겁니다. 강양석 님이 책 “데이터로 말하라”에서 짚은 것도 이 지점입니다. 데이터는 말빨보다 강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회의가 아니라, 같은 사실 위에서 판단하는 회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데이터는 나를 증명하는 무기가 아니라, 팀을 정렬시키는 언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습니다. 좋은 데이터 한 줄은 열 번의 설득보다 강합니다.
데이터는 두 곳에서 나온다
그럼 어떤 데이터를 봐야 할까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지금 하려는 일이 기존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냐, 새로 무언가를 기획하는 것이냐에 따라 봐야 할 데이터가 갈립니다.
제품 지표: 서비스 안을 들여다보기
이미 돌아가고 있는 서비스를 개선할 때는, 서비스 안에 쌓인 제품 지표를 봅니다. 사람들이 어느 화면에서 들어와서 어디까지 가고 어디서 나가는지, 그 발자국이 전부 데이터로 남아 있습니다. 이게 가장 정직한 신호입니다. 말이 아니라 실제 행동이니까요.
시장 지표: 서비스 밖을 내다보기
아직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로 기획할 때는, 서비스 안에 볼 데이터가 없습니다. 이때는 서비스 밖의 시장 지표를 봅니다. 토스뱅크가 서민금융 상품인 햇살론뱅크를 준비할 때가 이런 경우입니다. 금리와 연체율이 오르고 서민금융 공급이 확대되는 시장 흐름, 경쟁사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같은 큰 흐름과 작은 흐름을 읽습니다. 시장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읽어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문제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둘은 자주 섞인다
이 둘은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습니다. 자주 섞입니다. 예를 들어 규제가 강화돼 심사가 까다로워지는 시장 변화가, 우리 서비스의 승인 전환율이라는 제품 지표에 그대로 영향을 줍니다. 밖의 흐름이 안의 숫자를 흔드는 겁니다. 그래서 좋은 기획자는 안과 밖을 함께 봅니다. 안쪽 숫자만 보면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를 놓치고, 바깥 흐름만 보면 그게 우리한테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놓칩니다.
퍼널을 쪼갠다는 것
제품 지표를 볼 때 가장 유용한 방법이 퍼널을 쪼개 보는 것입니다. 퍼널은 사용자가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거치는 단계들을, 위에서 아래로 좁아지는 깔때기 모양으로 늘어놓은 것입니다. 위로 들어온 사람이 단계를 지날 때마다 조금씩 빠져나가고, 맨 아래까지 도달한 사람만 남습니다.
토스뱅크 계좌 개설 사례에 적용해 봅니다. 계좌 개설이라는 목표를 이렇게 단계로 쪼갭니다.
- 계좌 개설을 시작한 사람: 100%
- 본인 인증 단계로 넘어간 사람: 90%
- 신분증 인증(KYC) 단계에 진입한 사람: 80%
- 신분증 인증을 통과한 사람: 이 단계에서 열 명 중 여섯 명이 이탈
- 계좌 개설을 끝낸 사람
이렇게 화면 단위까지 잘게 쪼개서 각 단계에 몇 명이 남는지를 보면, 뭉뚱그려 있을 때는 안 보이던 게 튀어나옵니다. 다른 단계에서는 대부분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유독 신분증 인증 단계에서만 사람들이 크게 빠져나간다면, 문제의 위치가 정확히 그 지점으로 좁혀집니다.
이게 퍼널의 힘입니다. “계좌 개설이 잘 안 돼요”라는 막연한 문장을, “신분증 인증 화면에서 열 명 중 여섯 명이 이탈해요”라는 손에 잡히는 문장으로 바꿔 줍니다. 이제 팀은 어디를 파야 할지 압니다.
데이터가 여기까지만 알려준다
그런데 퍼널은 한 가지를 알려주지 못합니다. 어디서 빠지는지는 알려주지만, 왜 빠지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신분증 인증 화면에서 사람들이 나간다는 건 알겠는데, 카메라가 문제인지, 안내가 불친절한 건지, 애초에 신분증이 없어서인지, 숫자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데이터로 답이 안 나옵니다. 사람에게 직접 물어봐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물어보는 일에는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종종 사실과 다르게 답합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은 이 연재에서 가장 긴 편이 될 겁니다. 고객에게 직접 묻고 지켜보는 방법, 즉 서베이와 인터뷰와 관찰을 하나하나 다룹니다. 왜 고객은 거짓말을 하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진짜 신호를 뽑아내는지, 그리고 세 방법을 어떻게 겹쳐 써서 확신에 이르는지.
한 줄로 남깁니다. 문제는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로 인식하세요. 데이터는 팀을 같은 그림 앞에 세우는 언어입니다. 다만 데이터는 “어디”까지만 알려줍니다. “왜”는 사람에게 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