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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씽킹 : 고객중심은 태도가 아니다

1편. 지금 왜 디자인 씽킹인가

새로운 서비스보다 날카로운 서비스의 시대. 디자인 씽킹이 무엇이고, 왜 지금 제품 만드는 사람에게 필요한지 정리합니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장면을 겪습니다. 회의실에 아이디어가 쏟아집니다. “이거 요즘 유행이던데 우리도 하자.” “저 앱 이 기능 좋더라, 붙이자.” 다들 열심히 말하는데, 이상하게도 정작 “누구의 어떤 문제를 푸는가”는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이 연재는 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첫 편에서는 디자인 씽킹이 무엇이고, 왜 지금 제품 만드는 사람에게 이게 필요한지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새로운 서비스보다 날카로운 서비스의 시대

한때는 새로운 아이디어 자체가 무기였습니다. 에어비앤비, 아마존, 카카오, 배달의민족, 쿠팡. 인터넷과 모바일이 열리던 시기에는 “이런 서비스가 세상에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그때의 전략은 단순했습니다. 빠르게 내놓고 빠르게 실험한다. 성공의 척도도 명확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쓰는가.

지금은 다릅니다. 슬랙, 피그마, 듀오링고, 토스, 당근 같은 서비스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라서가 아닙니다. 메신저도, 디자인 도구도, 송금도, 중고 거래도 이미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긴 건 같은 문제를 남들보다 제대로 풀었기 때문입니다.

배경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검색 한 번이면 이미 세상 어딘가에 있습니다. 숫자로 보면 실감이 납니다. 웹사이트는 하루에 약 25만 개, 1초에 세 개꼴로 새로 생깁니다. 전 세계에 12억 개가 넘지만, 그중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것은 여섯 곳 중 한 곳 정도입니다. 앱도 하루에 수천 개씩 등장하고, 대부분은 활성화되지도 못한 채 사라집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서비스가 아니라 날카로운 서비스의 시대입니다. 살아남는 것은 고객의 문제를 제대로 파고들어 해결하는 서비스입니다. 토스가 자주 인용하는 Carrying Capacity 개념이 이걸 잘 압축합니다. “1명의 고객에게 미친 만족감을 제공하면 수만 명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 넓게 퍼뜨리는 것보다, 한 명을 깊이 만족시키는 힘이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서비스는 문제를 만족으로 옮기는 일

그렇다면 서비스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요.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서비스는 사용자가 가진 문제를 만족으로 옮겨주는 일입니다.

문제가 불만족으로 끝나면 고객은 떠납니다. 만족으로 끝나면 다시 돌아옵니다. 리텐션이라는 어려운 말도 결국 이 이야기입니다.

내일 아침 도시락을 싸야 하는데 식재료가 없는 상황을 떠올려 보세요. 주문한 걸 제때 못 받으면 그 사람은 실망하고 떠납니다. 반대로 새벽에 정확히 받으면, 다음에도 그 서비스를 찾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상황인데 결과가 갈립니다. 그 갈림길에 서비스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이 하나로 수렴합니다. 고객의 문제를 만족 쪽으로 옮겨놓았는가.

화면이 아니라 경험이 먼저다

여기서 흔히 순서를 거꾸로 잡습니다. 사용자는 화면(UI)을 통해 경험(UX)을 하게 되니, 화면부터 그리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획의 순서는 반대입니다. 우리가 주려는 경험이 화면의 모양을 결정합니다.

증권 앱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증권 리터러시가 높은 고객을 겨냥한 키움증권과, 리터러시가 낮은 고객을 겨냥한 토스증권은 완전히 다르게 생겼습니다. 전자는 정보를 빽빽하게 보여줘도 됩니다. 후자는 용어 하나까지 풀어주고, 버튼 하나까지 덜어내야 합니다. 두 화면이 다른 이유는 디자이너 취향이 아닙니다. 지향하는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커머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쿠팡은 “쇼핑을 가장 쉽고 빠르게”에 무게를 둡니다. 상세 페이지를 거치지 않고 바로 담게 하고, 복잡한 인증 없이 결제하게 하고, 새벽에 받게 합니다. 반면 29CM는 “발견하는 과정 자체를 즐겁게”에 무게를 둡니다. 콘텐츠를 읽으며 머무르게 하고, 쿠폰을 조합하는 재미를 줍니다. 같은 커머스인데 화면이 이렇게 다른 이유도 하나입니다. 풀려는 고객의 문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씽킹이란 무엇인가

이제 본론입니다. 디자인 씽킹은 두 단어로 나눠 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먼저 디자인입니다. 흔히 예쁘게 만드는 일로 오해하지만, 원래 뜻은 더 넓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저서 “인공물의 과학(The Science of the Artificial)“에서 디자인을 “현재 상태를 더 나은 상태로 바꾸려는 모든 행위”로 정의했습니다. 예쁘게가 아니라 더 좋게 만드는 일이 디자인입니다.

작은 예가 있습니다. 토스터에 붙은 “조금 더 굽기” 버튼입니다. 사람들은 빵을 얼마나 더 구워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덜 익히거나 태웁니다. 이 버튼은 그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문제를 더 나은 쪽으로 옮겨놓습니다.

다음은 씽킹입니다. 여기서의 사고는 머릿속 추측과 다릅니다. 그냥 씽킹이 개인의 선입견과 분석에 기대는 것이라면, 디자인 씽킹은 더 좋아진 모습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가며 탐구하는 것입니다. 시각화하고, 실체로 만들어 보고, 다듬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 둘을 합치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디자인 씽킹은 내 머릿속 정답을 관철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와 그가 겪는 문제에서 출발해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가는 사고 방식입니다.

인스타그램은 어떻게 로고를 바꿨나

말로만 하면 추상적이니, 널리 알려진 사례 하나를 자세히 보겠습니다. 인스타그램의 로고와 앱 개편입니다.

당시 인스타그램은 사진 SNS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동영상, 스토리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다양한 순간이 모이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로고와 화면은 여전히 실물 카메라를 본뜬 옛 모습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서비스의 본질은 달라졌는데 디자인이 그걸 담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것이 그들이 정의한 문제였습니다.

여기서부터가 디자인 씽킹입니다. 리디자인을 이끈 디자이너 이안 스폴터(Ian Spalter)는 책상에 앉아 멋진 로고를 새로 그리는 대신, 직원들에게 기억나는 대로 인스타그램 로고를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결과가 흥미로웠습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그린 것은 정교한 카메라가 아니라 렌즈와 뷰파인더, 무지개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본질적인 요소만 남기고 나머지를 걷어낸 것이, 지금의 단순한 그라데이션 아이콘입니다.

핵심은 방법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내 감각으로 정답을 정한 게 아니라, 사용자의 인식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앱 화면도 같은 원칙으로 색과 장식을 덜어내, 화면이 아니라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가 주인공이 되게 했습니다. 이 과정 전체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 디자인의 미학(Abstract: The Art of Design)” 시즌 2의 이안 스폴터 편에 담겨 있으니, 관심 있으면 한 편 보시길 권합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GE 헬스케어는 MRI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고충에 공감해, 검사 장비와 공간을 해적선 어드벤처처럼 꾸몄습니다. 기계 성능을 높인 게 아니라 경험을 바꾼 겁니다. 아이가 우는 검사에서 아이가 기대하는 모험으로 문제를 옮겨놓았습니다.

기술이 아니라 사용자 문제에서 시작하기

정리하면 디자인 씽킹의 시작점은 언제나 사용자와 그가 겪는 문제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지는 자주 하는 실수와 나란히 놓으면 분명해집니다. 상담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오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 기술에서 시작하는 경우: “요즘 인공지능이 좋으니 챗봇을 붙여 상담 비용을 줄이자.” 사용자의 문제가 통째로 빠져 있습니다.
  • 비즈니스 문제에서 곧장 솔루션으로 점프하는 경우: “상담 비용이 높으니 인공지능으로 상담원 생산성을 높이자.” 출발은 그럴듯하지만, 사용자가 애초에 왜 상담을 하러 오는지를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 사용자 문제에서 시작하는 경우: “상담 비용이 높은데, 사용자는 어떤 문제 때문에 상담을 하게 될까. 그 문제를 먼저 찾아서 해결하자.”

세 번째만이 디자인 씽킹입니다. 앞의 둘은 문제를 건너뛰고 솔루션으로 달려갑니다. 그럴듯해 보여도, 진짜 원인을 건드리지 못하니 상담은 줄지 않습니다.

이 연재가 걸어갈 길

디자인 씽킹의 전체 흐름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고객을 정의하고, 문제에 공감하고,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만들고, 시제품으로 확인하고, 실행하고, 피드백을 받습니다. 이 연재는 그중 솔루션을 만드는 단계까지를 다룹니다. 고객의 문제에 뿌리내린 아이디어가 완성되면, 그다음 시제품과 실행은 요즘 도구들로 훨씬 빠르게 갈 수 있으니까요.

다음 편에서는 첫 단추인 고객 정의로 들어갑니다. “우리 고객”이 누구인지 정하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그리고 여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헛디디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한 줄로 남깁니다. 솔루션이 아니라 사용자 문제에서 시작하세요. 나머지는 전부 그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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