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고객이 제품을 고용하는 목표에서 시작하라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드릴을 사는 이유는 드릴이 갖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벽에 구멍을 뚫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파고들면 구멍 자체도 목적이 아닙니다. 그림을 걸어 방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겁니다. 우리가 파는 게 드릴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계속 드릴만 개선합니다. 손잡이를 바꾸고, 무게를 줄이고. 하지만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게 구멍이라면, 어쩌면 드릴보다 나은 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연재의 마지막 편입니다. 지금까지 고객을 정의하고, 문제를 파고, 풀 문제를 고르고, 아이디어를 펼치고,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제 이 모든 걸 하나의 솔루션으로 꿰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 실마리가 바로 이 드릴 이야기, 고객이 제품을 고용하는 목표입니다.

고객은 목표를 이루려고 제품을 고용한다

관점을 하나 바꿔 봅시다. 고객은 우리 제품을 쓰는 게 아니라, 자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제품을 고용한다고 보는 겁니다. 마치 일을 시키려고 사람을 고용하듯이요. 목표가 다 이뤄지면 고객은 언제든 제품을 해고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의 초점을 바꿔 주기 때문입니다. 기능에서 시작하면 우리는 “무엇을 만들까”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용 목표에서 시작하면 “고객이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에서 기능을 거꾸로 끌어내면,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꿰입니다.

목표를 문장으로 적어 본다

이 고용 목표를 붙잡는 좋은 방법은, 하나의 문장으로 적어 보는 것입니다. 언제, 무엇을, 왜의 세 조각으로요.

  • 언제: 고객이 어떤 상황에 있는가.
  • 무엇을: 그 상황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 왜: 그걸 이루면 결국 무엇이 좋아지는가.

토스뱅크 신분증 인증 사례에 적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신분증을 촬영할 때(언제), 정상 신분증이 OCR에서 문제없이 인식되어 통과되기를 원한다(무엇을), 그래야 계좌 개설까지 막힘없이 끝낼 수 있다(왜).”

이 문장 하나에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이 압축돼 있습니다. 우리가 정의한 고객, 우리가 판 근본 원인, 우리가 세운 가설이 전부 이 한 줄로 모입니다.

목표에서 기능이 나온다

이제 이 고용 목표에서 만들 기능을 끌어냅니다. 순서가 반대인 게 핵심입니다. 기능을 먼저 정하고 목표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목표를 먼저 세우고 거기서 기능을 뽑습니다.

토스뱅크 사례의 목표에서 두 가지 기능이 나옵니다. 첫째, 신형 신분증까지 제대로 읽는 새 OCR 모델을 만듭니다. 이게 목표를 정면으로 이루는 기능입니다. 둘째, 그래도 인식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사람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수기 검증 절차를 백업으로 둡니다. 이건 지난 편에서 준비한 실패 플랜이 그대로 기능이 된 겁니다.

만약 기능부터 정했다면 어땠을까요. “OCR 모델 개선”, “수기 검증 절차”, “촬영 안내 문구” 같은 게 서로 따로 노는 조각들로 남았을 겁니다. 왜 만드는지, 어느 게 먼저인지가 흐릿한 채로요. 하지만 고객의 목표에서 시작하면, 모든 기능이 “계좌 개설을 막힘없이 끝낸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렬됩니다. 무엇을 먼저 만들고 무엇을 대비책으로 둘지까지 자연스럽게 정해집니다.

아홉 편을 한 문단으로

이제 이 연재 전체를 한 문단으로 묶겠습니다.

새로운 서비스가 아니라 날카로운 서비스의 시대에는, 솔루션이 아니라 사용자 문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먼저 모든 사용자가 아니라 우리 비즈니스를 떠받치는 그 한 사람을 우리 고객으로 정의합니다. 그 고객이 어디서 막히는지를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로 인식하고, 왜 막히는지는 서베이와 인터뷰와 관찰을 겹쳐 확인합니다. 고객은 종종 사실과 다르게 답하니까요. 그렇게 찾은 문제에서 증상이 아니라 근본 원인까지 “왜”를 반복해 파고, 임팩트와 해결 가능성이라는 두 축으로 지금 붙을 문제를 골라냅니다. 다 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들 것을 정하는 거죠. 그다음 다른 사례에서 재료를 모아 아이디어를 펼치되, 아이디어는 제안일 뿐이니 인과에 기반한 가설을 씌워 성공 확률을 높이고, 성공선과 실패선을 미리 못박습니다. 마지막으로 고객이 제품을 고용하는 목표에서 기능을 끌어내, 흩어진 조각을 하나로 꿰맵니다.

이 흐름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한 문장은 첫 편과 같습니다. 솔루션이 아니라 사용자 문제에서 시작하세요. 근본 원인까지 파고, 인과관계로 가설을 세우고, 고객이 이루려는 목표에서 솔루션을 정의하세요.

마지막으로 남기는 질문

이 연재를 닫으며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만들고 있는 그 기능은, 어떤 고객의 어떤 근본 원인에서 출발했나요. 혹시 문제보다 솔루션이 먼저 정해져 있지는 않았나요.

이 질문에 막힘없이 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날카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답이 잘 안 나온다면, 그건 잘못된 게 아니라 지금 돌아갈 지점을 찾은 겁니다. 이 연재의 어느 편으로든 돌아가, 다시 고객과 문제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아홉 편을 함께 걸어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만드는 다음 기능이, 누군가의 문제를 만족 쪽으로 확실히 옮겨놓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