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좋은 솔루션은 분석에서 나온다
회의실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쿠팡 최근 검색어 기능 있잖아요, 편하던데 우리도 넣죠.”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럴듯하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디어에는 빠진 게 너무 많습니다. 누가 불편한지, 그 사람이 우리 고객인지, 이 기능이 우리 서비스의 목표와 맞는지.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편들에서 우리는 고객을 정의하고, 문제를 데이터로 보고, 근본 원인을 파고, 풀 문제를 골랐습니다. 이 모든 게 지금부터의 솔루션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이번 편은 솔루션을 만드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어디서 재료를 얻고 어떻게 아이디어를 펼치는지를 다룹니다.
좋은 솔루션은 상상력이 아니라 분석력에서 나온다
먼저 오해 하나를 깹니다. 좋은 솔루션은 번뜩이는 상상력에서 나온다고들 생각합니다. 천재적인 아이디어 하나가 판을 바꾼다는 환상이죠. 하지만 실제로 좋은 솔루션은 상상력이 아니라 분석력에서 나옵니다.
앞의 “최근 검색어” 아이디어가 왜 위험한지 다시 봅시다. 고객과 문제가 빠진 아이디어는 책임 없는 훈수에 가깝습니다. 남의 집 살림에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 던지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좋아 보여서 넣은 기능은 대개 아무도 안 씁니다. 애초에 누구의 어떤 문제를 푸는지 모른 채 만들었으니까요.
좋은 솔루션은 인과관계 위에 섭니다. 사용자 경험을 보고, 고객을 정의하고, 문제를 정의한 다음, 바로 그 문제에서 솔루션을 끌어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이 정확히 이 순서였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는 허공에서 튀어나온 게 아니라, 앞의 모든 분석이 떠받치는 아이디어가 됩니다.
솔루션을 만드는 과정도 순서가 있습니다. 다른 사례에서 배워 재료를 모으고, 아이디어를 크게 펼치고, 가설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솔루션을 정의합니다. 이번 편은 앞의 둘, 다음 편은 가설, 마지막 편은 솔루션 정의를 다룹니다.
다른 사례에서 배우기, 즉 리서치
아이디어를 펼치기 전에 재료가 필요합니다. 인풋 없는 발산은 그냥 상상입니다. 아무 재료도 없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보자”고 하면, 나오는 건 각자 머릿속에 있던 뻔한 것들뿐입니다.
프로는 다릅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 만한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뽑아냅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재료를 미리 모아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재료를 다른 사례에서 얻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S카드사의 카드 추천이 개인화가 부족해 전환율이 낮은 상황이라고 합시다. 이럴 때 공개된 사례에서 배울 점을 찾습니다.
- 토스는 마이데이터로 사용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맥락에 맞는 추천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결과 사용자에게 “광고”가 아니라 “추천”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되묻게 됩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데이터는 무엇인가.
- 스포티파이는 “One great recommendation could have a large positive effect on satisfaction”, 즉 단 하나의 좋은 추천이 만족에 큰 영향을 준다는 관점을 공개적으로 밝혀 왔습니다. 100퍼센트를 맞히지 않아도 만족을 줄 수 있고, 취향 데이터를 조각조각 모아 나간다는 접근입니다. 여기서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힌트를 얻습니다.
리서치의 원칙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 같은 업계뿐 아니라 경험 목표가 비슷한 다른 업계까지 넓게 봅니다. 커머스의 문제를 음악 서비스에서 배울 수도 있습니다. 둘, 무작정 베끼지 않습니다. 다른 서비스의 화면을 그대로 옮겨오면 우리 맥락에서는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신 사람들이 이미 익숙하게 여기는 방식은 존중합니다. 굳이 다르게 만들어서 사용자를 헷갈리게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아이디어를 크게 펼치기
재료가 모였으면 이제 펼칠 차례입니다. 크게 발산하고, 재구성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순서로 갑니다. 여기엔 전제가 둘 있습니다. 정의된 문제와 목표 아래에서만 펼칠 것, 그리고 리서치로 얻은 재료 위에서 펼칠 것. 이 두 울타리가 없으면 발산은 그냥 잡담이 됩니다.
빠르게 많이 내기
먼저 짧은 시간에 여러 개를 강제로 뽑아냅니다. 여기서는 양이 곧 질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건지려면 나쁜 아이디어를 여러 개 지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하나를 찾으려 하면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관통 사례라면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이미 가진 정보를 활용하기, 신분증을 여러 각도로 녹화하기, 인식 유사도가 높으면 일단 통과시키기, 촬영을 안내해주기, 아예 다른 인증 수단으로 우회하기. 좋고 나쁨은 나중에 가리고, 일단 많이 냅니다.
비틀어 보기
다음으로, 나온 아이디어를 여러 방향으로 비틀어 봅니다. 대체해 보고, 결합해 보고, 다른 곳에 적용해 보고, 수정해 보고, 용도를 바꿔 보고, 덜어내 보고, 뒤집어 봅니다. 예를 들어 “신분증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신분증을 짧게 녹화한다”로 비틀면, 여러 프레임 중 가장 잘 인식되는 걸 고를 수 있다는 새 가능성이 열립니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여러 각도로 발전하는 겁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처음의 뻔한 아이디어들이 서로 결합하고 변형되면서, 재료들이 조합된 새로운 솔루션의 씨앗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아직 제안일 뿐이다
여기서 조심할 게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아이디어를 펼치고 비틀어도, 그건 아직 제안일 뿐입니다. 그럴듯해 보인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발산 단계에서 나온 아이디어에 그대로 반해버리면, 검증 없이 만들기로 직행하는 사고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디어와 실행 사이에 반드시 한 단계가 더 필요합니다. 이 아이디어가 정말 문제를 풀 수 있는지, 그 성공 확률을 높이는 장치입니다. 그게 다음 편의 주제, 가설입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카지노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카지노가 어떻게 매번 이기는지를 알면, 왜 우리가 아이디어에 가설을 씌워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좋은 가설과 나쁜 가설은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무엇으로 판정할지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한 줄로 남깁니다. 좋은 솔루션은 상상력이 아니라 분석력에서 나옵니다. 다른 사례에서 재료를 모으고, 정의된 문제 위에서 아이디어를 펼치세요. 단, 아이디어는 아직 제안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