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증상 말고 근본 원인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이 있습니다. 두 가지 대응이 가능합니다. 화장으로 누런 기를 가리거나, 병원에 가서 간 건강을 살피거나. 화장은 당장 눈에 띄는 효과가 있습니다. 빠르고, 티가 나고, 칭찬도 받습니다. 하지만 간이 나빠진 거라면, 화장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를 가려서 더 위험하게 만듭니다.
제품을 만들 때 우리는 놀랄 만큼 자주 화장 쪽을 고릅니다. 지난 편에서 문제를 데이터로 보고 사람에게 물어 이유까지 캐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급하게 “그럼 이걸 고치자”로 넘어가면, 십중팔구 화장을 하게 됩니다. 이번 편은 증상과 근본 원인을 가르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왜 자꾸 증상만 건드리나
이탈, 느림, 낮은 전환, 복잡한 화면. 이런 것들은 전부 증상입니다. 눈에 잘 띄고, 측정하기 쉽고, “이걸 고치겠다”고 말하기도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증상을 보자마자 곧바로 아이디어를 쏟아냅니다. “이탈이 높네, 버튼을 크게 하자.” “느리네, 로딩 화면을 예쁘게 하자.”
문제는 증상을 없애도 원인이 그대로면, 증상은 곧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버튼을 키워도 이탈이 안 줄면, 우리는 애초에 이탈이 버튼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닫습니다. 그동안 쓴 시간과 사람의 노력은 이미 사라진 뒤입니다. 증상만 건드리는 일이 위험한 이유는,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를 다섯 번 반복하기
근본 원인으로 내려가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도구는 “왜”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답이 나오면 거기에 다시 “왜”를 붙이고, 또 붙입니다. 대개 다섯 번쯤 파고 내려가면 진짜 원인이 나온다고들 합니다. 관통 사례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 사람들이 토스뱅크 계좌 개설 중에 이탈한다. 왜?
- 신분증 촬영에 실패한다. 왜?
- 화면이 어둡거나 인식이 안 된다. 왜?
- OCR이 신분증을 제대로 못 읽는다. 왜?
- 그 OCR 모델을 외부 연구기관에서 만들어 붙였는데, 최근 새로 나온 형태의 신분증을 학습하지 못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를 더 봅니다. 토스뱅크는 지점이 없는 인터넷은행이라, 인식이 실패해도 창구에 가서 직원에게 대면으로 처리할 길이 없습니다. 온라인에서 막히면 정말로 끝인 겁니다. 이 두 가지가 겹칩니다.
그래서 근본 원인은 “촬영이 어렵다”가 아닙니다. “인식이 실패했을 때, 그것을 끝낼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구조”입니다. 처음에 보였던 “촬영 실패”라는 증상과는 완전히 다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첫 번째 답에서 멈춰 촬영 화면만 예쁘게 고쳤다면, 신형 신분증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막혔을 겁니다.
근본 원인을 파야 방향이 바뀐다
근본 원인을 파는 일이 얼마나 방향을 바꾸는지, 다른 사례로 하나 더 보겠습니다.
당근마켓은 판교 직장인들의 중고 거래에서 시작했는데, 유독 육아용품이 남편들을 통해 활발하게 거래되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표면만 보면 답이 뻔해 보입니다. “육아용품 전문 거래 앱을 만들자.” 실제로 데이터도 그렇게 가리키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아래를 팠다면 어땠을까요. 왜 하필 육아용품이 활발할까. 아이 물건은 금방 못 쓰게 되는데 새로 사기는 아깝고, 아이를 키우느라 멀리까지 나가 거래하기는 어렵고, 택배로 모르는 사람과 거래하자니 사기가 걱정된다. 이런 원인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육아용품”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과 믿고 거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답이 “육아용품 전문 거래”가 아니라 “동네 기반 거래”가 됩니다. 근본 원인을 파지 않고 표면의 데이터만 따라갔다면, 방향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좁은 카테고리 앱에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증상은 육아용품이었지만, 원인은 동네였던 거죠.
근본 원인은 하나가 아닐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이면, 근본 원인이 항상 딱 하나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관통 사례에서도 이탈의 원인은 여러 갈래입니다. 신분증을 아예 안 가지고 있어서 귀찮아 그만두는 사람, 신형 신분증이라 인식이 안 되는 사람, 본인이 촬영을 잘못하는 사람. 각각 원인이 다르고, 각각 규모도 다릅니다.
그러면 이 여러 원인을 다 풀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다음 질문이 시작됩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지금 붙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모든 원인을 다 풀 수는 없으니, 골라야 합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은 어쩌면 이 연재에서 가장 실전적인 편입니다. 근본 원인을 여러 개 찾아냈을 때, 그중 무엇을 지금 풀고 무엇을 미룰지 고르는 법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두 개의 축으로 문제를 좌표에 찍어 보면, 다 만들려는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 줄로 남깁니다. 증상을 없애지 말고 원인을 없애세요. “왜”를 반복해 진짜 원인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누런 얼굴에 화장만 덧칠하게 됩니다.